초등학교 축구대항전 시장기 대회를 약 2달 남겨 둔 상황에 새로 코치님이 오셨다
이 분은 선수출신은 아니였지만 축구를 너무 사랑했고 축구가 너무 좋아 혼자 책을 읽고 독학을 하셨다
어릴 때 너무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셨기 때문에 축구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셨고 어렵게 축구공을 하나 구해서
시골집 마당에 벽에 대고 혼자 패스 연습을 하셨다고 했다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이 좋은 축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막 느껴졌다
그런 기운과 현재 우리 축구부원들의 분위기가 맞아 떨어진 탓인지 금방 가까워지고 우리는 훈련에 열심히 임했다
코치님과 2주정도의 훈련이 지난 후 1박 2일 합숙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부모님 동의를 다 받아야 된다고 했고 우리 축구부는 4,5, 6학년 해서 총인원이 약 30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 살 빼려고 온 친구, 친구 따라온 친구, 나처럼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 축구부에
들어온 것처럼 가지각색의 이유로 축구부를 하고 있어서 1박 2일 합숙을 한다는 게 정식축구부가 아닌 이상
학부모님들께서 쉽게 허락해주시 않았다
특히나 동규라는 친구의 부모님 두 분은 선생님이셨고 동규는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축구부를 하는 걸 그냥 취미활동정도
생각하셨기 때문에 완강히 반대하셨고 4학년의 성훈이라는 동생은 우리 지역의 꽤 부자집 귀한 자식이라 합숙을
한다는 것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친구 중에 원창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 앞에 상가 건물에서 어머니께선 부동산을 운영하시고
아버지께선 지역방법대장으로 활동하셨는데 가끔 우리를 찾아와 간식도 사주시고 학교와 학생들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써주셨던 감사한 분이셨다
원창이 아버지께서 발벗고 나서주시면서 일일이 반대하시는 학부형들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을 시켜주셨고
합숙하는데 일부회비를 지원까지 해주셨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속에 우리의 첫 합숙 훈련이 확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원창이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 하다가 항상 간식도 사주시고 미니 버스도 운행해 주셨기 때문에
그때는 구단주 ,단장이라는 호칭은 모르고 그냥 이 정도면 우리 총감독님 아니냐면서 총감독님이라고 불렀고
원래 체육선생님이 감독님이셨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감독님은 원창이 아버지께서 되셨다
그렇게 감독님 ,코치님 우리는 이렇게 멋진 팀이 되었다
합숙장소가 문제였다
없는 예산으로 많은 인원이 합숙을 진행하려다 보니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결국
코치님의 옛날 시골집에서 합숙을 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는 한동안 집이 비워져 있어 수리와 청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코치님께서 6학년들을 몇몇을 모아 시골집 정리를 하러 가게 되었다
나, 길상, 호준, 정혁 등을 포함해 7명 정도 갔다
진짜 어마어마한 시골집에 가운데 마당은 텃밭이었는데 쓰레기 더미였다
그리고 지반을 평평하게 해야 해서 흙도 퍼다 날라야 했다
아마 지금 초등학생들이라면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부모님께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고 그냥 1바2일을 합숙한다는 자체가 재미있어해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나는 마당의 텃밭을 정리했고 몇몇은 방 청소를 했다
텃밭에는 고구마가 자라서 다 파내고 흙으로 덮어야 했고 완전 땡볕이었다
괜히 방에서 청소하는 애들이 얄미웠다 그리고 방청소를 하던 애들은 빨리 끝이 났고 갑자기 사라졌다
시간이 지난뒤 갑자기 친구들 몇 명이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신다고 간다고 했다
마을슈퍼에 가서 집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4명의 친구가 가버리고 나 포함해 호준, 정혁 3명이 남았고 우리는 계속 일을 했다
코치님께서 메로나를 사 오셔서 그걸 먹고 다시 힘내서 일을 하고 반복하기를 한참 했다
호준이와 정혁이도 마을버스를 타러 도망을 가버렸고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땐 그냥 좋지 못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던 코치님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냥 불평불만 하지 않고
묵묵히 옆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일을 했다
결국은 해가지고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코치님께서 그만하자고 하시고 집으로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집으로 가는 길에 코치님께서 너는 왜 안 갔냐고 물으셨고
별생각 없이 "우리가 지내야 하는 곳이니깐요"라고 대답했다
코치님께서 고맙다 하시면서 너는 일머리는 없어도 의리가 있네라고 하셨다
어릴 때라서 일머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의라는 단어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칭찬인가 싶기도 하고 해석해보면 미련하게 일은 못하는데 의리는 있네라고 느껴진다
아무튼 그 한마디로 나는 축구보다 축구부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더 많이 생겼고 솔선수범하며
주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정에 이끌리고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하는 것에 재미가 있고 흥미를 느꼈다
학습적인 거보다 감성적인 게 좋았고 이론보다 경험을 중요시하게 된 거 같다
그리고 지금도 축구를 하며 그 사람의 플레이를 보고 성향이나 습관들을 빨리 캐치하게 되었고 성격까지도
파악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나 요즘 결과만 중요시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나도 거기에 순응하고 따라가야 하지만
꼭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과정이 중요한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축구훈련만 매진했다면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축구에 흥미가 없었고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모습에 흥미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축구를 하며 축구를 잘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느끼는 내 감정과 경험들이
현재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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