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길상이 현수를 포함해 9명 정도가 4학년 축구부 인원이었다
정식축구부는 아니었고 그냥 체육선생님께서 방과 후 수업으로 진행하는 클럽활동 축구부였다
다들 훈련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1년에 한 번 10월에 열리는 시대회가 전부여서
그때만 잠깐 열심히 하는 그런 축구부였다
그래서 보통 방과 후 형들을 따라 축구는 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조직의 힘을 보여주고 다녔다
형들과 함께 있으면 학교 앞 북새통인 문방구에서 쫀드기를 하나 사 먹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주장 형이 였던 진일이 형이 "마 나온나" 한마디면 모세의 기적처럼 그 복잡했던 곳에서
바로 문방구 주인할머니와 독대를 할 수 있었다
뽑기(달고나)를 하러 가서 연탄불 앞에 자리가 없어도 축구부가 우르르 몰려가면 연탄불보다 우리가 뜨거웠는지
피하기 일쑤였다 내가 그 속에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고 그 재미로 한동안 푹 빠져 축구부형들과 시간을 보냈다
시대회를 3개월 남겨 뒀을쯤 새로운 코치님이 한분 오셨다
프로축구선수 출신이라며 더블백을 메고 나이키코르테즈 운동화 신고 꽁지머리 낯선분이 운동장으로 걸어오셨다
그리곤 이번 시대회를 꼭 우승시킬 거라고 했다
이 촌동네에 프로축구선수가 오다니 신기했지만 그가 누군지 어떤 선수였는지 관심 밖이었다
나는 축구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축구부를 해서 인기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달을 훈련을 하고 아 나는 4학년이라 대회를 뛸 수 없구나 그러면 형들처럼 인기가 올라가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흥미가 정말 떨어지기 시작했고 학교를 마치면 훈련을 가지 않고 미술학원에 가서 6학년 누나들과 놀거나 친구들과
퐁퐁을 타러 다녔다
어느 날 코치님께서 나 길상이 현수 3명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훈련에 나오지 않아 야단을 들을 거 같아 불안에 떨며 서있었다
앉아있던 자리에 일어나시면서 화를 내실줄 알고 바짝 긴장을 했는데 갑자기 볼리프팅을 보여주셨다
(볼리프팅이란?
저글링이라고도 불리는데 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터치를 하는 아주 기초적이 축구훈련이다)
우린 그걸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체육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보여주시지 않은 기술 이었는데 정말 서커스에서 손으로 공 3개를 떨어뜨리지 않고
마구 돌리듯이 발로 축구공을 한 번도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거의 100개 정도를 튕기셨다
그때 알았다 프로는 다르구나!!!
우리 보고 이제 해보라고 하셨다
처음 해보는 동작에 간신히 운동신경 없는 나는 겨우 3개 길상 5개 현수 5개
이렇게 첫 리프팅은 꼴등으로 시작되었다
근데 왜 우리 셋만 시키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꼴등을 했다는 게 너무 한심스러웠다
이걸 못해? 내가? 왜 안되지? 왜 쟤들 보다 못하지 하며 자책했다
그리곤 코치님께서 오늘 리프팅 10개를 달성하는 사람에게 1000원을 주신다고 했다!
그 시절 1000원이면 밭두렁,아폴로,꾀돌이,네거리캔디,쫀디기를 사고도 100원이 남는 큰돈이었다
우리는 말로는 다 같이 10개 달성해서 문방구 가서 비싸서 평소에 사 먹지 못했던 보름달빵과 우유를 사 먹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속으론 보름달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셋의 자존심 걸렸었다
정말 혼심의 힘들 다해 운동장을 거닐며 리프팅을 했다 하나,둘,셋,넷에에 아...
1개 더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정말 더럽게 안되네 나는 투덜거렸다
그런데 현수가 갑자기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9개를 한 것이었다
그 사이 길상이는 7개를 했고 나는 5개를 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 옆에 돌로 만들어진 벤치가 있었는데 볼이 워낙 이리저리 튀어가다 보니
벤치에 걸려 넘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큰일 날 수도 있는 사항이었는데 그때 처음 몰입이라는 걸 했던 거 같다
힘들어서 보다 집중을 하니 땀이 줄줄했다
예스 예스 오예스를 외치는 현수!
결국 10개를 제일 먼저 달성했다
그럼 길상이 보다는 내가 먼저 해야지 하고 현수에 달성을 못 본 체 못 들은 체 경주마처럼 나는 앞에 공만 바라보았다
시간은 30분이 넘게 흐르고 나는 5개 이상을 하지 못했다
길상이도 10개를 달성했고 현수와 함께 1000원씩을 받았다
나는 끝내하지 못하고 내일은 기약했다
코치님께서 정말 딱 냉정하게 길상이와 현수만 용돈을 주시고 오늘 수고했다고 내일은 더 큰 선물을 주신다며
학교를 나가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현수가 문방구 가자고 했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우리 셋만 시키셨을까 돌이켜 봤을 때
내가 자존심도 강하고 또래 중에 골목대장을 하면서 훈련은 하지 않고 우르르 몰려다니니깐
운동신경이 좋은 현수와 길상이를 통해 나를 자극을 줄려고 하신 거 같다
그때가 아마 처음 몰입과 패배감을 동시에 맛본 거 같다
내가 물론 잘하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서운한 마음은 아직도 있긴 하다 그 어린 나에게
매정하게 하신 게 아직도 서글프다
요즘 느끼는 현실은 더욱더 냉정하고 서글프다
한때 우상으로 생각했던 선임과 함께 일을 하며 즐겁고 행복했는데 코로나사태로 인해 불가피하게
회사는 구조조정이 필요했고 우리 팀은 해체가 될 위기였는데 우상이었던 선임은 나와 의논도 없이
다른 팀의 자리를 이미 마련을 해놓고 나에게는 방법이 없다며 뒤돌아 섰다
어렸지만 지금도 그때 그 기억의 느낌은 경쟁구도의 체제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나는 겉으론 으스대고 나서지만 마음 한편엔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의구심들이 항상 자리했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도 또래친구들에게 위협을 가해서 내가 기쁨을 얻는 건 잘 못되었다는 생각
코치님께서 경쟁을 만들어 자극시키려고 했던 사항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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